2020코미디캠프 : 틈

2020.7.2-11 신촌극장



기획,예술감독. 김진아


작,출연. 김은한 신강수 안담


음악. 배선희


촬영. 이종우


2020신촌극장라인업







'틈'을 여닫는 세 사람 

김은한, 신강수, 안담의 코미디


틈: 모여있는 사람들 속, 벌어져 사이가 난 자리, 이미 있던 거리,
너무 빠르게, 아니면 너무 조용히 지나갈 기회들.
어느 틈에 웃을까요?





창작자 인터뷰


세 코미디언의 공연 전 인터뷰.


김은한

/ ‘매머드머메이드’

/ <겉돌며 맴도는 회전으로서>  <오문오방: 무릉도○>

  <성 알마의 비즉흥극 리믹스>


신강수

/ 연기하는 연기쟁이 희곡짓는 글쟁이 난놈중에 난쟁이

/ <소리극 ‘옥이’> <132cm사용설명서>(책),

  <박나래의스탠드업>(방송)

안담

/ 배우, 논술학원 강사, 비건팝업식당 운영, ...

/ <플루토>, <선의의 계획>


기획의도


한국에서는 주로 'TV 개그 프로그램에서 하는 것'을 칭하는 코미디.

다수가 비하와 조롱에 기반한 농담과 장난에 익숙해져 버렸고, 다른 웃음을 잘 상상하지 못한 채 코미디를 저급한 장르로만 여기는 듯 하다.  


1인극 창작을 주로 해온 '매머드머메이드' 김은한과 

예원예술대학교 코미디학과를 졸업하고 연극배우로 활동하며 스탠드업으로 방송에도 데뷔한 신강수, 

간헐적 배우, 잠재적 작가, 논술학원 강사, 비건팝업식당 요리사로 종횡무진 살고있는 안담은

서로 매우 다른 경로를 거치며 자신만의 웃음의 세계를 가꾸어왔다.

그 세계는 정원과 같고, 때로는 칼날 같으며, 때로는 호수와 같다. 

그리고 때로는,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본 모든 TV프로와 책과 만화 등등이 도열한 작은 방이다. 

운 좋게도 세 사람의 방-호수-칼날-정원을 흘깃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고, 코미디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훈련의 흔적에 반하게 되었다.


이들은 건강한 웃음을 추구하지만, '온전히 무해한 웃음/관계'가 가능하다고 믿지 않으며, 세상에서 겪는 좆같음을 연습시켜주는 예방주사로서 '웃음'을 슬쩍슬쩍 찌르고 다닌다.


이들의 애정에 기반한 농담과 장난에, 따끔한 예방주사에 더 많은 사람이 즐겁기를 바라며 <2020 코미디캠프 : 틈>을 열기로 했다.

 


앨범


공연 사진


작업 과정


예술감독 노트

이십대가 끝날 즈음엔 많은 후회와 자책과 화와 억울함이 있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쳇바퀴를 돌다가, 너무 심각하게 살았다는 점을 깨달았다. 심각할 수밖에 없는 일들이 있지만 매몰되면 안 되었는데. 

그 와중에 나에게 ‘취향’이 생겨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거기서 가장 큰 위로를 받았다. 왠지 덜 외롭고 막막해졌다.

연극을 많이 봤고, 무대와 배우들의 아름다움에 빠졌고, 더 구체적으로 좋아하는 작업자들이 생기고, 연출과 기획은 뭘 해서 저런 걸 만들어내는 걸까 궁금해졌다. 뭘 어떻게 하는 건지 궁금해 하면서 좋아하는 팀들을 열심히 따라다녔다. 어떤 영화나 소설, 음악에도 그렇게 팬심을 갖게 되지는 않았는데 말이다.

동시에 ‘코미디’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그 즈음 내가 좋아한 연극의 순간들은 대체로 쨘하게 마음을 녹이는 감각으로 이루어졌다. 인물과 배우(창작자)와 나의 진심이 만나는 것만 같아 눈물이 나는 순간들. 여전히 그런 감각을 제일 좋아한다. 하지만, 어떤 진심을 그대로 전하지 않고 약간 눙치거나, 더 흥미진진하게 만들거나 하면서 상대의 반응 - 그 중에서도 웃음 -에 초점을 두는 코미디의 방식에도 점점 끌리게 되었다. 웃음을 목표로 하는 작업에는, ‘필수적으로’, 상대와 상황을 가능한 정확하게 파악하려는 관심과 정성이 들어간다. 그 정확성에 대한 추구에서 위안을 얻은 것 같다.

TV에서 보는 코미디는 주로 ‘쉽게 웃길 수 있는’ 표현들에 집중되어 있긴 하지만 방송 코미디언 중에서도 자기만의 방법이 어떻게 관객들과 통하는지 갈고닦은 멋진 사람들이 있었다. 영미권 스탠드업을 찾아보면서는 입장의 ‘차이’를 부각하고 이용하는 데서 오는 웃음을 좋아하게 되었다. 많이 보진 못했지만 일본 개그만의 이상함도 좋아하고... 어느 장르에 속한다고 할 수 없는 코미디 창작자들 몇 명을 우상으로 삼게 되었다. 

그렇게 코미디언으로서 동경, 감탄하게 되는 사람들을 내 근처에서도 만나게 된 것은 너무 큰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그 첫 번째였던 인물은 이번 공연에 섭외하지 못했다. 하지만 근래에 만난 사람들 중 코미디를 대하는 마음과 기량이 감동적인 세 사람과 함께하고 있어서 리허설 기간이 너무 아... 무슨 말을 붙일 수 있을까. 좋다.


저는 정말 멋있는 코미디 창작자들을 모았어요. 

<2020 코미디캠프 : 틈>에 모인 김은한, 신강수, 안담 놓치지 말고 보러오세요.

7월 2일부터 11일 신촌극장입니다.

아직 이번주 [금요일(7/3) 8시], [토요일(7/4) 8시반], 다음주 [토요일(7/11) 6시] 세 공연에 여유가 있고, 다른 회차에도 조금씩 자리가 남아있네요.


이 공연이 우리의 비극에 틈이 되기를.


/2020.7.2 홍보를 겸하여 작성 


리뷰

2020.7.18 Point-of-view 블로그

페미니스트 코미디 클럽 운영자 김경은

"2020 코미디캠프 : 틈 x 김진아"



"페미니스트 코미디 클럽(페미코미)"을 통해 탁월한 페미니스트 코미디 작품들을 소개하고 분석하는 작업을 해오신 김경은 님께서 <2020 코미디캠프 : 틈>을 관람하고 리뷰를 남겨주셨습니다. 코미디 방법론에 대한 식견과 함께 정성을 들여 꼼꼼하게 써주신 리뷰 감사합니다. 김경은 님이 '비밀스러운 매력'이라 말해주신 점은 아마도 지금아카이브가 일반적으로 해온 공연과 스탠드업 코미디의 접점에서 찾고자 한 '연극성'일 것 같습니다:)


신강수: 팬클럽 창단식의 정석 中

저는 신촌극장 버전이 훨씬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KBS 버전은 솔직히 좀 식상했어요. 장애 이야기가 나올 때 배경에 깔리는 “KBS스러운” 음악 때문에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신촌극장 공연에서의 신강수 씨는 조심스럽고 공손한 “공중파용” 페르소나가 아니라 뻔뻔하고 자신감 넘치는 “무대용” 페르소나의 매력을 마음껏 발산하셨거든요. 게다가 자신의 코미디 토픽에 대한 청중들의 이해도 수준을 잘 파악한 상태에서 아주 능숙하게 좌중을 이끌어 가셨죠. 한국에서 이런 영리한 코미디 공연이 얼마든지 가능하구나, 왜 지금껏 이런걸 더 많이 못 봤지? 라는 아쉬움과 답답함이 느껴질 정도였어요.


김은한: 카프카의 어릿광대 中

김은한 씨의 공연은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보았던 한나 개즈비의 공연을 떠올리게 하더군요. “코미디적 픽션”이라는 허구적인 공간을 구축해 두고, 그 안으로 관객들을 초대하여 퍼포머가 만들어 둔 서사의 공간을 마음껏 탐색하도록 만드는 설계자이자 초대자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관객들과의 호흡을 능수능란하게 조종하시는 김은한 씨의 조련 스킬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었고요. 마치 놀이공원에서 아주 스릴 넘치는 놀이기구를 타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안담: 페미니스트 코미디의 가능성 中

안담 씨의 코미디는 “틈”이라는 제목에 가장 걸맞는 공연이었어요. 이 대목에서 또 저는 한나 개즈비를 떠올렸는데, “코미디” 공연이 무엇인지 관습적으로 생각하는 틀을 완전히 깨줬다고 할까요. 무대에 서 있는 코미디 퍼포머란 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그들은 서 있어야 하나? 앉아 있어야 하나? 말을 해야 하나? 침묵해야 하나? 관객을 웃겨야 하나? 아니면 뻘쭘하고 불편하게 만들어야 하나? 다양한 생각의 화두를 던지는 멋진 공연이었습니다.


구글문서에서 전문 읽기


2020.7.23. 웹진 『연극인』 

평론가 김미정 

"세 개의 웃음, 시인의 마음으로 귀가하던 날"



평론가 김미정 님께서 코로나19 시대에 '웃음'의 정동을 발생시키는 공연의 의미를 논해주셨습니다.

신강수, 김은한, 안담 코미디의 출발점과 지향점을 정확하게 알아보고 풀이해주셨음에 감사합니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재현의 요구? 가로지르기! 中


신강수의 연기는, 신체적 특징, 장애와 같이 일상에서 민감하거나 정치적 사안과 결부되기 쉬운 소재를 본격적으로 다룬다. 소위 장애나 신체적 특징을 웃음의 소재로 다룰 때, 그것이 전형적인 대상화, 타자화의 폭력에 근거하여 유발되는 웃음이었음을 많은 이들은 기억한다. 그렇기에 그것은 오늘날 소위 정치적으로 올바른 재현의 요구와 결부되기 쉬운 소재이기도 하다.
하지만 신강수는 그런 사정을 과감히 횡단한다. 웃음의 미학과 양립하기 어려워 보이는 제재들을 자유자재로 다루면서 관객을 능수능란하게 움직인다. 이것은 당사자의 자기재현은 언제나 윤리적일 것일 것이라는 식의 다소 게으른 통념과는 별개의 이야기이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와 유머는, 다루는 소재의 경험에 근거한 장악력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것은, 그 소재가 사회 속에서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대한 통찰 없이는 불가능하다.

아이러니의 난장(亂場) : 카프카와 폭소 中

두 번째 무대를 여는 배우 김은한이 코미디계의 소위 “틈새시장”을 노리겠다고 밝힌 농담 혹은 진심은 썩 일리 있는 것이었다. 그는 카프카의 짧은 우화소설들을 일종의 퍼포먼스 아트로 재탄생시킨다. 카프카의 소설이 인간의 실존과 불안, 세계의 부조리를 주제화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그것이 얼마나 유머나 웃음이라는 주제와 호환되기 쉬운지 그는 정확히 알고 있었다.

한 유쾌한 차별주의자의 농담과 진심 中

낯선 장소에서 사적인 이야기나 농담을 스스럼없이 할 수 있는지 아닌지야말로 그곳에서 작동하는 보이지 않는 힘의 관계를 암시할 때가 있다. 말을 갖고 있다는 것, 말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 곧 권력의 문제라는 것은 종종 비유가 아니다. 어쩌면 스타성에 기반한 최근 스탠드업 코미디도 구조적으로는 이러한 위계에 대한 암묵적 합의 없이 성립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미 무대의 주인공이 충분히 유명하다고 가정된 상황이라야 사사로운 이야기들조차 공감대를 형성하고 호응을 불러일으키기 쉽기 때문이다.
무대에 등장한 안담이 다른 배우들과 달리 커다란 마이크를 들고 “제가 오늘 유명하기로 정했다.”며 관객과의 또 다른 역할극을 제안할 때, 이미 그녀의 극이 이러한 촌철 블랙유머로 가득 찰 것임은 예상하기 어렵지 않았다. 명명의 효과, 언어의 수행성은 그녀의 무대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웹진 『연극인』 에서 전문 읽기



『한국연극』 통권 529호 (2020.8) 

연출가 라시내 (프로젝트 이인)

"서로를 마주보기, 혹은 그냥 웃어버리기 / 지금아카이브 <2020 코미디캠프 : 틈>"



『한국연극』 에 게재된 연출 라시내 님의 리뷰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연극-틈'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리고 <2020 코미디 캠프 : 틈 >의 세 코미디언이 드러낸 '틈'은 무엇인지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익숙한 스탠드업 문법을 하나의 바탕 줄기로 놓고 그에서 벗어나는 흐름들로 보다 넓은 범주의 '코미디'를 지향한 공연의 전체 구성 또한 분석해주셨네요. 특별히 안담의 '틈'에서 출발하여 본 공연과 '연극,' '살아가기'의 관계를 그려주신 문장들을 옮겨둡니다. 


안담이 타이머를 6분 15초에 맞추고, 무대 바닥에 앉아서 물끄러미 객석을 바라볼 때, 그 이상하고 아름다운 순간에, 나는 가만히 귀를 기울여서 그녀가 자기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동원해야 할 백 마디 말보다 분명한 침묵으로 자기 존재를 다른 사람들에게 건네는 것을 듣는다. 그리고 코미디의 작동이 중단된 바로 그 자리에서 지금 여기에 함께 모인 서로 다른 사람들 속, 서로를 마주하고 있는 공연자와 관객 사이의 거리가 드러나는 것을 본다. 나는 그러한 '사이'를 혹은 '사이'의 드러남 자체를 '연극'이라고 부른다. 안담은 그것을 "틈"이라고 부른다. 이미 언제나 거기에 존재하는 틈, 하지만 매번 새로이 열어야 하는 틈,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우리 각자 모두 조금 더 명랑하게 살아남기를. 


구글문서에서 전문 읽기


『월간시선』 (2020.8)

셰끼스피어

"우리를 살아 숨 쉬게 하는 건 어쩌면 정수리의 숨구멍 같은 '틈'이 아닐까?"



"연극비평집단 시선"의  셰끼스피어 님께서 『월간시선』 8월호에 리뷰를 실어주셨습니다. 공연의 부제인 '틈'이 어떻게 각 코미디언의 작업에 연결되었는지 짚어주셨고, 우리의 세계에 살아 숨쉴 틈을 주는 웃음의 역할에 대한 사유를 담아주셨습니다. 2020년 지금아카이브의 화두가 "사는 힘"이었기에 위 라시내 님의 리뷰와 함께 더욱 반가운 글이었습니다.  


 신나게 한바탕 웃어젖힌 후 극장을 나설 때쯤이면, 문득 ‘코미디'와 ‘틈'이라는 이 엉뚱한 조합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그 끝에서 발견되는 것은 ‘틈'과 ‘코미디'가 분리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의미로 가득 찬 삶 속 ‘틈'의 ‘존재'와 ‘역할'이라는 사유로 범위가 확장된다. 공연에선 언어와 논리로 설명될 수 없는 틈이 우리를 살아 숨 쉬게끔 했다. 그 좌정에서 관객은 잠시나마 웃음으로써 자유를 만끽하곤 했다. 그렇게 <2020 코미디캠프 : 틈>은 관객에게 “어느 틈에 웃을 것"인지 물으며 손수 웃음의 틈을 내어주고 있었다. 마치 정수리의 숨구멍처럼 말이다.


구글문서에서 전문 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