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타임/ 밀사의 찻잔
2020.01.17-22 삼일로창고극장
작.연출. 김진아
조연출. 나온유
드라마터그. 밀사 안담
퍼포머. 김진아 배선희
송이원 안정민 이지혜
* 이상 리서치 참여
무대. 김재란
조명. 정유석
음악. 김현수
노래 작곡. 배선희
오퍼. 고재혁
사진. 이종우
영상기록. 손영규
기획. 최주희
제작. 지금아카이브
후원. 서울문화재단
전직 성노동운동 활동가, 비여성 페미니스트, 창작자 '밀사'의 말과 글에서 빌려온 모티프들로
"시든 해가 뜨는 땅"이라는 세계를 짓고,
그 잔영이 비치는 텐트 안으로 관객을 초대했습니다.
밀사를 둘러싼 수많은 돌림노래 속에서, 밀사 자신이 부르고자 한 노래가 주술처럼 번지기를 바라며 만들었습니다.
기획의도
<티타임/ 밀사의 찻잔>은 극단 “지금아카이브”의 연출가 김진아가 ‘밀사'라는 인물을 통해 보게 된 절망의 세계를 탐험하는 내용의 공연이다. 연극계에서 배우, 작가, 연출 등으로 활동하는 배선희, 송이원, 안정민, 이지혜가 김진아와 함께 출연한다. 그외 드라마터그 밀사와 안담, 조연출 나온유, 무대디자이너 김재란, 조명디자이너 정유석, 음악감독 김현수가 참여하고, 최주희 기획으로 제작하고 있다.
밀사는 지금 한국의 페미니즘 지형에서 특수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전직 성노동 운동 활동가이자, 비여성 페미니스트이며, 우울증 등의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사람이고, 글을 쓰는 창작자이기도 하다. 공동저서로 『성노동자, 권리를 외치다』(철수와 영희 출판, 2015)가 있으며, 브릿G라는 플랫폼에 중·단편 소설 열 편을 발표했다.
그는 더이상 자신을 ‘활동가'로 정체화하지 않으나, 여전히 성노동자를 비롯, “(주류의 기준에서) 올바르지 않은 약자들”의 문제에 시선을 두고 있다. 이들은 종종 ‘비생산성’과 ‘비도덕성’을 이유로 공공의 안전망을 누릴 자격마저 의심받기에, 사회의 가장 열악한 저변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그 중 성산업 현장은 ‘젠더권력과 자본권력이 중첩적으로 작용하는 곳’으로, 주로 경제적, 심리적으로 취약한 여성들이 착취의 대상이 된다.
밀사가 몸담았던 성노동 운동은, 성판매자의 일을 ‘노동’으로 사유해야 보다 안전한 환경을 구축하고 성판매자들의 생존권과 노동권을 제대로 보장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한편 성노동 운동의 비판자들은 ‘성노동’이라는 용어 자체에 우려를 표한다. 성판매를 ‘노동'으로 일컫는 행위가, 성판매자의 피해 경험을 피해로 인정받지 못하게 하며, 성매매가 기본적으로 ‘성차의 문제’라는 점을 은폐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성거래를 범죄화하는 기존 정책을 유지하며 성매매 피해자 보호 및 성산업 근절을 목표로 하는 주류 여성주의 운동가들의 ‘반성매매' 담론의 기저를 이루고 있다.
이와 같이 성산업의 문제를 직시하고 제거해나가고자 하는 노력 속에서 첨예한 담론들이 각축하는 한편, 아직 다수에게 ‘성노동/성매매'의 문제는 변방의 일로만 여겨진다. 성산업이 한국 사회의 특정 영역이 아닌 구조 전반에 얽혀있음에도, ‘성(sex, sexuality)' 에 대한 거론 자체를 터부시하는 문화와, 성매매 행위에 대한 일차적 혐오로 인해 좀처럼 논의가 확장되지 못하고 있다. 관련 사안에 문제의식을 갖는 이들 사이에는 치열한 논쟁이 오가지만,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는 “찻잔 속의 태풍”일 뿐이다. 찻잔 안의 갈등이 심화되며 논의의 참여자들 사이에는 반목이 쌓이고, 무관심하던 이들은 더 접근하기 어려워지며, 현장의 당사자·연대자들은 고립되는 상황. 지금아카이브는 <티타임/ 밀사의 찻잔>이 이러한 지형에 아주 미약하게나마 의미있는 균열을 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티타임/ 밀사의 찻잔>은 밀사가 바라보았을 사회의 모순과 갈등을 “시든 해가 뜨는 땅"이라는 배경의 판타지 세계관 속에 펼쳐 놓는다. 특정 인물의 자취를 따라가는 이야기이지만, 밀사와 성노동 담론의 주장들만 재현하지 않으며, 여성들이 같은 절망적 현실 속에서도 왜 다른 입장을 가질 수밖에 없는지 세밀하게 더듬어보고자 한다.
밀사의 찻잔을 들여다보며
연출 김진아
"시든 해가 뜨는 땅" 세계관
리뷰
연극평론가 이경미
“찻잔 태풍, 그 안의 박탈에 대한 기록”
*2019서울청년예술단의 지원을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이제 관객은 시각 대신 머리에서 등, 발끝까지 그 공간을 채운 퍼포머들의 목소리에, 빛에, 그리고 다른 소리들을 향해 몸의 감각을 연다.
하나하나 감각을 열어가는 과정에서 이 공간의 낯섦은 조금씩 관객의 몸을 중심으로 재배열된다.
그렇게 보면 이 연극에 참여한 관객은 엄밀한 의미에서 ‘관객(觀客)’이라고 할 수 없다.
그들은 눈 대신에, 아니 눈 보다는 자신의 다른 감각들을 동원해 볼 수 있는 것 너머의 어떤 것들에 다가가가기 때문이다.
연극평론가 이경미 님께서 <티타임/ 밀사의 찻잔>을 '박탈의 기록'으로 읽어주셨습니다.
공연을 보신 분들은 어떤 감각들이 각자의 몸 안에 재배열되었는지, 서사적이거나 감각적인 접점이 더 필요했다면 무엇이었을지 생각해보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시각문화비평가 이연숙(리타)
'밀사'라는 악명
<티타임/ 밀사의 찻잔>은 공간이라는 물리적 조건을 통해 관객의 경험, 즉 일시적이고 은밀한 유대의 감각을 경험토록 강제한다. 그러나 극이 진행됨에 따라, ‘판단 유보’된 채 천막 바깥에서 불길하게 떠다니던 ‘밀사’의 이름은 곧장 관객들 사이를 찢어 놓는다. 이는 <티타임/ 밀사의 찻잔>이 ‘밀사’의 입장에서 관객들에게 동일시를 요구하거나, 반대로 ‘밀사’라는 인물에 대해 비판적 거리두기를 시도해서도 아니다. 오히려 <티타임/ 밀사의 찻잔>에서 전면적으로 거부되는 것은 ‘밀사’라는 인물의 재현가능성이다. 극 속에서 주술처럼 반복되는 것은 내용 없는 그의 이름일 뿐이다. 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밀사’가 ‘진아’에게 던지는 물음-‘그런데 왜 저일까요? 왜 진아가 상상한 ‘밀사’의 세계를 봐야했을까요?’에 대해, <티타임/ 밀사의 찻잔>은 아무런 대답을 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질문에 응답할 수 있는 유일한 자격은 ‘세계의 목격자’인 관객들에게 돌려진다. <티타임/ 밀사의 찻잔>에서 ‘밀사’는 저주로, 소문으로, 돌림노래로, 수수께끼로, 형제 없이 공기를 진동시키고 세계를 정지시킨다. 관객들은 왜 하필 ‘밀사’에게 그런 역할이 부여되었는지 묻지 않는다. 왜냐하면 현실에서 ‘밀사’라는 악명이 유통되는 방식이 바로 그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관객들에게 남겨진 것은 ‘악명’에 이유를 붙이려는 충동, 내용 없는 이름을 정치화하려는 충동과의 경쟁이다.
시각문화비평가 이연숙 (리타) 님께서 ''밀사'라는 악명'이 <티타임/ 밀사의 찻잔> 극중에서 돌림노래로 떠도는 형식과 현실에서 유통되는 방식에 대해 논해주셨습니다. 내용없는 이름이 허공을 감도는 중, 극중 진아와 현실의 진아 모두 밀사의 전부를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그의 '체념'을 조우한 것 같습니다.
*2019서울청년예술단의 지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웹진 『연극인』
활동가 왹비, "벗어날 수 없는 불화의 삶에 대하여"
찻잔에 담겨있는 차의 맛을 추측하는 것과 직접 혀를 통해 맛보는 건 다르다. 차를 마셔봐야 비로소 맛을 음미할 수 있고, 자신의 추측이 일치하는지 틀렸는지 확인할 수 있다. <티타임/밀사의 찻잔>은 우리가 어깨 너머로 오해하고, 짐작으로만 상상하던 밀사의 찻잔을 건네받아 밀사가 망설이고, 경험한 세계들로 초대받는다.
현재 여/성착취적인 성산업에서 착취와 폭력으로부터 성노동자를 구제할 방법이 없다면,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성산업을 근절하는 순간까지도 존재할 수 없다. 성노동자가 탈성매매를 해야만 도움 받을 수 있고, 계속 성노동을 해야 하는 성노동자들을 처벌받게 하는 상황에 노출시킨다면 성노동자의 권리장전은 영원히 불가능하다. 소금들이, 성노동자들이 원하는 건 지레짐작하여 염전에서 자신을 구출해주는 게 아니다. 소금이어도, 꽃 파는 사람이어도, 성노동자여도 나의 일상이 무너지지 않고, 주변 사람들이 떠나지 않고, 각자의 존재로서 살아가도 괜찮을 수 있는 사회를 원한다.
활동가 왹비 님께서 웹진 『연극인』 리뷰에서
극에 담긴 은유를 해석하며 현실의 성노동 이슈를 면밀히 이야기해주셨습니다.
현장의 당사자 왹비님의 시점으로 읽은 <티타임/ 밀사의 찻잔>을 함께 들여다 봐주세요.
『월간시선』 2020년 1월,2월 제30호
평론가 졸리에르,
"페미니스트를 규명할 리트머스 시험지는 없다 <티타임/ 밀사의 찻잔>"
이런 인물을 내세워 이 연극은 선과 악, 옳음과 그름, 도덕과 부도덕, 강자와 약자, 내 편과 네 편, 성녀와 창녀 등의 이분법적 구도를 넘어서고자 한다.
'연극비평집단 시선'의 졸리에르 님이 월간시선에 리뷰를 실어주셨습니다.
창작자들의 주요 고민 중 하나인 '재현'의 문제에 이 극이 어떻게 접근했는지, 성노동 담론은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밀사라는 개인에 주목한 의의는 무엇인지 폭넓게 다루어 주셨어요.
『아트인사이트』 "문화는 소통이다" [안녕, 눈사람] 섹션, 2020.2.1
아트인사이트 필진 최은희,
"소금물을 뱉고 싶을 정도로 짰다 - 티타임/ 밀사의 찻잔"
"어려운 주제", "곤란한 대답", "난처한 입장". 어휘와 역설적이게도 이 말들은 가장 쉽고, 간단하고, 명료하다. 이렇게 말하고 돌아서면 더는 신경 쓸 필요가 없어진다. 찻잔 안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가든 관계없이, 차가 다 식을 때까지 뒤 돌아 있으면 그만이다.
비단 성노동 이슈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어떤 사건이든, 저 말들을 뱉으면 마법처럼 모든 책임을 회피하는 듯하다. 아무것도 해결되는 것 없이 모두 돌아서 버리면 끝내 찻잔 안에 고여있게 된다. 진짜 쉬운 문제는 답하기 쉬운 것이 아닌 외면하기 쉬운 것이었음을, 나는 완전히 깨닫게 되었다.
아트인사이트 전문필진 최은희 님이 [안녕, 눈사람] 섹션에 공연 리뷰를 남겨주셨습니다.
공연을 보며 느낀 사적인 마음들을 드러내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