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없이 멜랑꼴리 : 기록전시 >를 시작하며/ 진아
우울을 숨기지 않고, 해소하지도 않는 퍼포먼스.
관람자들도 자신의 우울을 더듬어보게 되기를 바라며, 다섯 명의 퍼포머가 먼저 우울을 마주하는 퍼포먼스를 준비했다. 그리고 일요일 정오부터 저녁까지 실연 및 송출하기로 했다.
우울에 대해 매일 생각하고 있을 이들을 먼저 떠올렸다. 선잠 자듯 하루를 보내고, 다른 선택 없이 또 잠에 드는 사람들. 이 퍼포먼스의 관람자 중 그런 이들이 있었다면 좋겠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리듬으로 심드렁하게 들여다보다가, 조금 비웃기도 하고 진심으로 웃을 수도 있는 하루가 되었다면. 타인의 우울에서 출발한 행위를 지켜봄으로써 자기만의 우울에서 나와볼 수 있었다면.
하지만 9월 6일 일요일을 기억하고 <한없이 멜랑꼴리>를 관람한 이들 대부분은 그렇게 깊은 우울 속에 빠져있지 않았을 듯 하다. 생활을 하려면 우울은 구석에 밀어두어야 하니까. 그런 분들도 모두, '평소의 리듬 안에서' 원하는 만큼 접속하며 ‘조금씩’ 우울을 만나기를 바랐다. 얕게 만나도 괜찮았다. 멜랑꼴리의 파장에 감응하고 자신의 불건강한 부분을 돌아볼 수 있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앞으로도 "선희와진아가"에서는 힘없고 건강하지 않은 것들을 그대로 바라보고, 다만 함께 바라본 뒤, 그대로 두는 작업을 이어가려 한다.
2020/9/6 12-9 pm 라이브 스트리밍 퍼포먼스 < 한없이 멜랑꼴리 > 기획 배선희 연출 김진아 음악 이상욱 영상 최윤석 구성.출연 배선희 김진아 이지혜 지구 허윤경 제작 선희와진아가
2020/12/3-6 (목-일)
< 한없이 멜랑꼴리 : 기록 전시 > 관람 안내
9월 6일 <한없이 멜랑꼴리>에서는 일곱개 퍼포먼스가 다음 타임라인에 따라 진행되었습니다.
* 퍼포먼스 제목을 클릭하면 해당 영상 위치로 이동합니다.
12:00 - 1:00 | 녹는점 | 다채널 트위치 송출 |
1:00 - 2:00 | 항우울 레시피 | ZOOM 화면 단채널 송출 |
2:00 - 3:00 | 낮잠 | ZOOM 화면 단채널 송출 |
3:00 - 4:00 | 연쇄시간살해사건 | 지구 트위치 화면 단채널 송출 |
4:00 - 5:00 | 외면 | 다채널 트위치 송출 |
5:00 - 6:00 | 한계점 | 다채널 트위치 송출 |
8:00 - 9:00 | 말할 수 없는 것 그러나 삼킬 수도 없는 것 그리고 혼자있고 싶지 않은 밤 | ZOOM 화면 단채널 송출 |
'트위치'는 인터넷방송 중계 플랫폼입니다. 관람자들은 퍼포머 각자의 트위치 채널과, "선희와진아가" 유튜브 채널을 오가며 <한없이 멜랑꼴리>에 접속할 수 있었습니다.
타임라인의 시간대 별로
1) 각자의 트위치 계정에서 퍼포먼스를 송출하고, 선희와진아가 유튜브 채널에는 다섯 개 트위치 영상을 동시에 볼 수 있도록 분할화면으로 담은 "다채널 구간"과,
2) 선희와진아가 유튜브 채널만을 이용, ZOOM 미팅 또는 한 명의 트위치 방송에 선희 진아 지혜 지구 윤경이 함께 접속하여 진행하는 퍼포먼스를 송출하는 "단채널 구간"이 있었습니다.
기록전시를 통해 < 한없이 멜랑꼴리 >를 처음 접하시는 분이라면, 목요일부터 일요일 중 홀로 보내는 시간에 타임라인 순으로 영상을 재생해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선희와진아가" 유튜브 화면이 상단에 크게, 그외 개별 퍼포머의 트위치 영상이 하단에 작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다시보기를 위해 접속하신 분이라면, 꼼꼼히 살펴보고 싶었던 퍼포먼스들을 참여자들의 글과 함께 감상해보세요.
이미지와 영상을 클릭하면 크게 보실 수 있으며, 모바일보다는 PC환경에 레이아웃이 최적화되어 있으니 참조해주세요.
전시 페이지 하단에는 선희의 글 "라이브 스트리밍 퍼포먼스 <한없이 멜랑꼴리>"가 게시되어 있습니다.
편안한 관람 되시기를 바랍니다.
< 한없이 멜랑꼴리 : 기록전시 >를 시작하며
/ 진아
우울을 숨기지 않고, 해소하지도 않는 퍼포먼스.
관람자들도 자신의 우울을 더듬어보게 되기를 바라며, 다섯 명의 퍼포머가 먼저 우울을 마주하는 퍼포먼스를 준비했다. 그리고 일요일 정오부터 저녁까지 실연 및 송출하기로 했다.
우울에 대해 매일 생각하고 있을 이들을 먼저 떠올렸다. 선잠 자듯 하루를 보내고, 다른 선택 없이 또 잠에 드는 사람들. 이 퍼포먼스의 관람자 중 그런 이들이 있었다면 좋겠다. 평소와 다르지 않은 리듬으로 심드렁하게 들여다보다가, 조금 비웃기도 하고 진심으로 웃을 수도 있는 하루가 되었다면. 타인의 우울에서 출발한 행위를 지켜봄으로써 자기만의 우울에서 나와볼 수 있었다면.
하지만 9월 6일 일요일을 기억하고 <한없이 멜랑꼴리>를 관람한 이들 대부분은 그렇게 깊은 우울 속에 빠져있지 않았을 듯 하다. 생활을 하려면 우울은 구석에 밀어두어야 하니까. 그런 분들도 모두, '평소의 리듬 안에서' 원하는 만큼 접속하며 ‘조금씩’ 우울을 만나기를 바랐다. 얕게 만나도 괜찮았다. 멜랑꼴리의 파장에 감응하고 자신의 불건강한 부분을 돌아볼 수 있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앞으로도 "선희와진아가"에서는 힘없고 건강하지 않은 것들을 그대로 바라보고, 다만 함께 바라본 뒤, 그대로 두는 작업을 이어가려 한다.
2020/9/6 12-9 pm
라이브 스트리밍 퍼포먼스
< 한없이 멜랑꼴리 >
기획 배선희 연출 김진아 음악 이상욱 영상 최윤석
구성.출연 배선희 김진아 이지혜 지구 허윤경 제작 선희와진아가
< 한없이 멜랑꼴리 : 기록 전시 > 관람 안내
9월 6일 <한없이 멜랑꼴리>에서는 일곱개 퍼포먼스가 다음 타임라인에 따라 진행되었습니다.
12-1 pm | 녹는점 |
1-2 pm | 항우울 레시피 |
2-3 pm | 낮잠 |
3-4 pm | 연쇄시간살해사건 |
4-5 pm | 외면 |
5-6 pm | 한계점 |
8-9 pm | 말할 수 없는 것 그러나 삼킬 수도 없는 것 그리고 혼자있고 싶지 않은 밤 |
전시를 통해 < 한없이 멜랑꼴리 >를 처음 접하시는 분이라면, 목요일부터 일요일 중 홀로 보내는 시간에 타임라인 순으로 영상을 재생해 보시기를 추천합니다.
다시보기를 위해 접속하신 분이라면, 꼼꼼히 살펴보고 싶었던 퍼포먼스들을 참여자들의 글과 함께 감상해보세요.
"선희와진아가" 유튜브 화면으로 송출된 영상이 상단에 크게, 그외 개별 퍼포머의 트위치 영상이 하단에 작게 배치되어 있습니다.
* '트위치'는 인터넷방송 중계 플랫폼입니다. 관람자들은 퍼포머 각자의 트위치 채널과, "선희와진아가" 유튜브 채널을 오가며 <한없이 멜랑꼴리>에 접속할 수 있었습니다.
이미지와 영상을 클릭하면 크게 보실 수 있으며, 모바일보다 PC환경에 레이아웃이 최적화되어 있으니 참조해주세요.
(특히 아이패드로 접속 시 포맷 오류가 있으니 다른 기기를 사용해주세요.)
전시 페이지 하단에는 선희의 글 "라이브 스트리밍 퍼포먼스 <한없이 멜랑꼴리>"가 게시되어 있습니다.
편안한 관람 되시기를 바랍니다.
녹는점 12:00 - 1:00 pm
각자의 우울로.
녹는점 . 선희
녹는점 . 선희
녹는점 . 진아
녹는점 . 진아
녹는점 . 지혜
녹는점 . 지혜
녹는점 . 지구
녹는점 . 지구
녹는점 . 윤경
녹는점 . 윤경
지혜/
차 한 잔을 정갈하게 마시는 것. 이 행위가 나를 지켜낸다. 깨끗한 테이블 위에 마음에 드는 티타월을 깔고, 어울리는 잔을 놓고, 용도에 맞는 도구들을 사용해 음료를 제조한다. 더 예쁘게, 더 깔끔하게, 이리 저리 배치를 바꿔본다. 스스로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나는 만족스러운가? 집착스러운가? 무엇으로부터 나를 지키려 했었던가?
윤경/
느려지느라 분주합니다 :
화면 너머 얼마나 있을지 가늠도 되지 않는 관객들을 상상하면서, 아무도 없는 연습실에 나와 핸드폰만이 독대한다....방송이 왠지 끊긴 것 같지만 안 끊겼을 수도 있다. 녹아내리며 느릿느릿, 방송이 끊겼는지 확인하러 핸드폰 뒤 컴퓨터 앞으로 가는 길이 멀고도 멀다;;
녹는점 12:00 - 1:00 pm
각자의 우울로.
녹는점 . 선희
녹는점 . 선희
녹는점 . 진아
녹는점 . 진아
녹는점 . 지혜
녹는점 . 지혜
녹는점 . 지구
녹는점 . 지구
녹는점 . 윤경
녹는점 . 윤경
지혜/
차 한 잔을 정갈하게 마시는 것. 이 행위가 나를 지켜낸다. 깨끗한 테이블 위에 마음에 드는 티타월을 깔고, 어울리는 잔을 놓고, 용도에 맞는 도구들을 사용해 음료를 제조한다. 더 예쁘게, 더 깔끔하게, 이리 저리 배치를 바꿔본다. 스스로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나는 만족스러운가? 집착스러운가? 무엇으로부터 나를 지키려 했었던가?
윤경/
느려지느라 분주합니다 :
화면 너머 얼마나 있을지 가늠도 되지 않는 관객들을 상상하면서, 아무도 없는 연습실에 나와 핸드폰만이 독대한다....방송이 왠지 끊긴 것 같지만 안 끊겼을 수도 있다. 녹아내리며 느릿느릿, 방송이 끊겼는지 확인하러 핸드폰 뒤 컴퓨터 앞으로 가는 길이 멀고도 멀다;;
항우울 레시피 1:00 - 2:00 pm
지혜의 항우울 레시피와 함께 하는 점심 시간.
지혜/
우울함과 무기력감을 극복하기 위한 식사법.
무기력할 때 카레를 먹으면 좋다. 녹차의 성분도 무기력감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내가 먹고 싶은 것은 떡볶이다. 며칠째 배달음식을 시켜 먹었고 폭식을 했고 먹방을 보며 침대에서 누워지냈다. 나는 떡볶이를 먹어도 될까. 인터넷검색창에 무기력 할 때 좋은 음식을 쳐본다. 떡볶이가 좋다는 말은 아무리 찾아도 없다. 그러나 무기력에 좋다는 카레, 녹차와 함께 먹어보기로 한다. 파란색 또한 우울증에 좋다. 파란색을 오래 들여다 봐보자. 비애감이 강한 음악도 좋다. 들어보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극장이 파괴되자 그 슬픔을 담아 ‘메타모르포젠’을 작곡했다. 좋아하는 것들을 곁에 두면 기분이 나아진다, 식탁에 올려놓자. 추레하게 식사하지 말고 이왕이면 옷장에서 가장 멋진 옷을 꺼내 입어보자. 식사를 하기 전 기도를 해보라. 감사한 마음을 가져보자. 그리고 어떻게든 움직여라. 움직이면 우울함이 나아질것이다. 그럼 녹차카레떡볶이 맛있게 드시고 좋은 하루 되세요.
윤경/
꼬리를 흔듭니다 :
배가 고팠다. 손가락은 카레가루로 다이빙하는 시간 외에는 옆에 사둔 편의점 떡볶이를 열심히 따로 집어먹는 일을 수행하였다. 짜장 떡볶이 말고 그냥 일반 맛을 사올걸 그랬다.
낮잠 2:00 - 3:00 pm
먹었으니 자고.
*삽입곡 : 이상욱, <불결한 왈츠>
상욱/
삽입곡을 맡아보기는 정말 오랜만이라고 프로젝트에 들어가며 얘기했었다. 그래서 정말 솔직한 음악을 만들어 봐야겠다고 얘기했었다. 왜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작업에서 더 솔직해질 수 있을까? 나를 내세우는 작업은 너무 욕심과 잡념이 많아져서 내가 무너져 버리니까. 제한과 조건 속에서는 오히려 나를 더 발견하게 되니까. 사실 이 프로젝트 전체도 그러한 상황이지 않았을까? 무대를 기반으로 작업을 하던 사람들이 온라인 매체를 낯설게 대면하기. 세상 요지경에서 비롯된 자의보다는 타의에 의한 시도. 그리고 그렇기에 드러난 특별한 솔직함. 게임을 하는 듯 뒤에서 작전을 짜고 많은 조작들을 수행하는 모습들은 무척 산만했지만 그렇게 시작된 유튜브 영상은 참 평화로웠다. 진부한 일상도 과장된 감정도 동등하게 진열되는 작은 화면 속 더 작은 화면들. 하지만 외로운 작은 세계들이 연결되기 시작하면서 고조되는 정서가 있었고, 마지막 일기의 낭독에서는 거의 폭발할 지경이 되어 당황스러웠다. 음악이 나올때는 너무 민망해서 소리를 끌 수 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특별한 경험은 아무래도 '낮잠'. 순정률과 정현파만으로 만든, 일체의 감정도 육체도 배제된 가장 순수한 음악. 소박한 방 풍경들과의 조화가 신비로웠다.
지혜/ 우리집 고양이는 항상 같은 자리에서 낮잠을 잔다네.
윤경/ 아마도 순환하고 있을 듯 합니다 : 선풍기가 끝물인 계절이었다.
연쇄시간살해사건 3:00 - 4:00 pm
"취미가 많습니다. 그런데 집중력이 없습니다.
무엇이든 5분 넘게는 못하는 제가 10개 넘는 취미를 갖고 있습니다.
(...) 저는 돈과 시간과 감정을 버리고 내일을 얻습니다."
- 지구
지혜/
수많은 지구 중 하나가 되어 화면 속 지구를 지켜보고 지구의 말을 하며 시간을 보내보자. 지구가 아닌 나에게 지구의 마음이 선명하게 들어오는, 그런 사건이 벌어졌다.
윤경/
대상에 집중하는 동안 숨을 평소보다 얕게 쉴 수 있습니다 :
알록달록 수많은 지구들 중 하나가 되어 보았다. 혼자 하는 말이지만, 마치 수많은 나들이 나를 응원하는 것처럼.
지구/
퍼포머로 참여한 지구입니다. 한없이 멜랑꼴리를 9시간 동안 스트리밍 하며 저는 여느 때와 별로 다를 것 없는 하루를 보냈습니다. 담배를 피우고, 아주 많이 피우고, 불안발작을 겪고, 밥을 꾸역꾸역 먹고, 음악을 듣고, 취미생활을 하다, 무너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동시에 아주 특별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취미거리를 처음으로 하나로 붙여 제가 버린 시간에 형상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을 하나씩 다시 뜯어 흩어버리며 얻어진 내일과 그 의미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외면하던 것들을 마주했습니다. 저를 무너뜨리는 따뜻한 것들을 생각했습니다. 제 한계점을 보고도 다시 돌아오는 다정한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한없이 멜랑꼴리와 함께 시간을 보낸 모든 사람들이 따로 있었지만 결국 우리는 함께였습니다.
함께 모여 우리는 눈을 가리며 함께 음악을 듣고 눈물 콧물을 쏟았습니다. 저는 그 경험이 마음에 남아 두 눈을 가리는 손 모양을 타투로 발목에 남겼습니다. 아주 먼 나중에 그때의 기억을 잊어도, 발목을 보면, 두 손을 들어 눈을 가리면 저는 다시 함께였던 우리를 볼 것입니다.
한없는 멜랑꼴리를 겪고 있는 우리가 함께 멜랑꼴리했다는 것에 안도를 느낍니다. 어쩐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이번에는 그렇게 내일을 얻었습니다.
외면-한계점 4:00 - 6:00 pm
"외면"과 "한계점" 퍼포먼스는 대체로 구분 없이 이어지므로 각 퍼포머마다 하나의 영상으로 게시합니다.
[외면] 당하거나 하면서.
[한계점] 침잠하던 방향으로 한 단계 더,
혹은 다른 쪽으로 비어져 나가기!
외면-한계점 선희
외면-한계점 선희
외면-한계점 진아
외면-한계점 진아
외면-한계점 지구
외면-한계점 지구
외면-한계점 지혜
외면-한계점 지혜
외면-한계점 윤경
외면-한계점 윤경
[외면]
지혜/
무기력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때에 선희와 진아가 우울에 공명하는 작업을 해보자고 했다. 내 우울함을 성토해야 하는 것인가, 당신의 우울함을 들어줘야 하는걸까, 우울할 수도 우울 했을 수도 우울하지 않을 수도 있는 여러분과 무엇을 나눠야 하는걸까. 그리고 왜. 작업의 과정 속에서 나는 여전히 혹은 더욱 더 무기력해지고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떼우고 싶어진다. 있잖아, 우린 뭘 너무 많이 하고 있어.
윤경/
어디가? 라는 질문을 받는 순간 표정이 굳는 건 어디 갈지 생각을 안해봤기 때문입니다. 기분이 나쁜게 아니에요 :
문득 다들 어떤 여행을 좋아하는지 궁금해진다. 정처없이 돌아다니는 감각, 삼천포로 빠지는 여행을 좋아한다. 안내책자에 빤히 나와있는 장소를 마치 드라마틱한 우연 속에서 발견한 듯한 바보놀이 가끔 한다.
[한계점]
지혜/
언젠가부터 말을 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그러나 동시에 말을 하고 싶은 마음도 강해지고. 그래서 잠시, 의식을 내려놓고 아무말이나 해보기로 한다. 혼자서는 결코 하지 않을 짓을 라이브로 지켜보는 몇 명의 관객들의 시선을 즐기며. 그러나 의식을 내려놓기란 결코 쉽지 않고 자의식은 점점 더 강해져만 가는데..
윤경/
맞닿으려고 :
계단 앞에서 신나는 음악소리가 들리고 마침내 모험이 끝나간다. 집에 있던 방송이 끊겼는데 때마침 방문자가 도착하여 두 사람이 한 프레임 안에 들어오는 감동의 현장. 고양이 화장실과 인간의 화장실 수도꼭지 사이 좁은 스테이지를 삽시간에 장악하는 땐스땐스
저녁식사와 휴식
말할 수 없는 것
그러나 삼킬 수도 없는 것
그리고 혼자 있고 싶지 않은 밤
8:00 - 9:00 pm
한 손을 가슴에 = 들리는 단어 혹은 문장을 따라한다.
양손 맞잡고 = 연상되는 단어 혹은 문장을 말한다.
한쪽 손바닥을 앞으로 = 들리는 말의 반대 의미의 말을 한다.
양손을 귀에 = 선희의 말이 들리지 않도록 덮는다.
지혜/
따로 또 같이 하루를 보내며 이토록 강한 연결감을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눈물콧물의 캠프파이어.
윤경/
혼자 있지 않기로 합니다 :
화면 밖으로 지혜가 잠시 사라진다. 아마도 눈물을 정리하고 있을 것 같다. 우린 떨어져 있고 눈 앞에 보였다가 안 보였다가 하는데, 여하튼 혼자 있지 않기로 한다.
[제작 후원]
강말금 권정희 권형준 권희수 김동우 김민경 김민조 김수진 김신록
김영상 김은한 김정은 김지연 김지은 김지현 김지현 김태은 김현수
김현진 나온유 박유진 박찬규 박하늘 변승록 서가영 서상현 성수연
송이원 신강수 양근애 염경석 염문경 우수진 우정인 원지영 유연주
이남주 이동경 이재미 이정은 이지원 이지윤 이한빛 이해든 임은정
임지민 장윤정 전서아 정대용 최세원 한민주 홍예원 홍혜은
*<한없이 멜랑꼴리>는 서울문화재단 "소소한기부" 프로그램을 통해 제작비를 모금하였으며, 총 53명의 후원자 분들께 지원을 받았습니다. 또한 당일 퍼포먼스가 끝난 뒤 아홉 분께서 후불 관람료를 입금해주셨습니다.
*퍼포먼스의 저작권을 비롯하여 초상권과 소유권은 김진아, 배선희, 이상욱, 이지혜, 지구, 최윤석, 허윤경에게 공동으로 있음을 밝힙니다.
about us. 선희와진아가
"선희와진아가"는 배우 배선희와 연출 김진아가 함께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지난 봄과 가을에 두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2020년 4-5월
주간 영상 메일링 서비스
<기이한 시대의 사랑 : 만날 수 없는 너에게>
9월 6일 오후 12-9시
라이브 스트리밍 퍼포먼스
<한없이 멜랑꼴리>
12월 31일에는 <나는 약하니까 거짓말을 해줘>를 극장 상연 및 실시간 영상 스트리밍 예정입니다.
11월 중순부터 모집한 글을 바탕으로 삶의 기억과 죽음에 대한 상상을 담아, 그리고 약간의 거짓말을 섞어서 치루는 장례식 공연입니다. 잠시간의 소멸과 애도의 경험을 함께하실 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선희와진아가 페이스북/트위터/인스타그램 @sunheewajinahga에
작업 소식이 업데이트 됩니다.
창작물 공유 플랫폼 Postype에 <기이한 시대의 사랑 : 만날 수 없는 너에게>
메일링 구독자들에게 발송된 영상과 작업 기록이 게시되어 있습니다.
영상은 유료, 작업 기록은 무료로 열람 가능합니다.
2020.12.31 7pm 극장 공연 + 실시간 스트리밍
<나는 약하니까 거짓말을 해줘> 공연 소개입니다.
(클릭하여 크게 보세요.)
『연극평론』 가을호 기획특집(2020.9.1 발행)
"코로나 시대의 연극현장, 극장은 멈추지 않았다"에 게재된
김진아 연출의 글을 첨부합니다.
2020년 4월부터 선희와진아가 활동을 하며
'온라인 공연'의 가능성에 대해 고민한 바들을 담고 있습니다.
항우울 레시피 12:00 - 1:00 pm
지혜의 항우울 레시피와 함께하는 점심 시간.
지혜/
우울함과 무기력감을 극복하기 위한 식사법.
무기력할 때 카레를 먹으면 좋다. 녹차의 성분도 무기력감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내가 먹고 싶은 것은 떡볶이다. 며칠째 배달음식을 시켜 먹었고 폭식을 했고 먹방을 보며 침대에서 누워지냈다. 나는 떡볶이를 먹어도 될까. 인터넷검색창에 무기력 할 때 좋은 음식을 쳐본다. 떡볶이가 좋다는 말은 아무리 찾아도 없다. 그러나 무기력에 좋다는 카레, 녹차와 함께 먹어보기로 한다. 파란색 또한 우울증에 좋다. 파란색을 오래 들여다 봐보자. 비애감이 강한 음악도 좋다. 들어보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극장이 파괴되자 그 슬픔을 담아 ‘메타모르포젠’을 작곡했다. 좋아하는 것들을 곁에 두면 기분이 나아진다, 식탁에 올려놓자. 추레하게 식사하지 말고 이왕이면 옷장에서 가장 멋진 옷을 꺼내 입어보자. 식사를 하기 전 기도를 해보라. 감사한 마음을 가져보자. 그리고 어떻게든 움직여라. 움직이면 우울함이 나아질것이다. 그럼 녹차카레떡볶이 맛있게 드시고 좋은 하루 되세요.
윤경/
꼬리를 흔듭니다 :
배가 고팠다. 손가락은 카레가루로 다이빙하는 시간 외에는 옆에 사둔 편의점 떡볶이를 열심히 따로 집어먹는 일을 수행하였다. 짜장 떡볶이 말고 그냥 일반 맛을 사올걸 그랬다.
낮잠 2:00 - 3:00 pm
먹었으니 자고.
상욱/
삽입곡을 맡아보기는 정말 오랜만이라고 프로젝트에 들어가며 얘기했었다. 그래서 정말 솔직한 음악을 만들어 봐야겠다고 얘기했었다. 왜 자의가 아닌 타의에 의한 작업에서 더 솔직해질 수 있을까? 나를 내세우는 작업은 너무 욕심과 잡념이 많아져서 내가 무너져 버리니까. 제한과 조건 속에서는 오히려 나를 더 발견하게 되니까. 사실 이 프로젝트 전체도 그러한 상황이지 않았을까? 무대를 기반으로 작업을 하던 사람들이 온라인 매체를 낯설게 대면하기. 세상 요지경에서 비롯된 자의보다는 타의에 의한 시도. 그리고 그렇기에 드러난 특별한 솔직함. 게임을 하는 듯 뒤에서 작전을 짜고 많은 조작들을 수행하는 모습들은 무척 산만했지만 그렇게 시작된 유튜브 영상은 참 평화로웠다. 진부한 일상도 과장된 감정도 동등하게 진열되는 작은 화면 속 더 작은 화면들. 하지만 외로운 작은 세계들이 연결되기 시작하면서 고조되는 정서가 있었고, 마지막 일기의 낭독에서는 거의 폭발할 지경이 되어 당황스러웠다. 음악이 나올때는 너무 민망해서 소리를 끌 수 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특별한 경험은 아무래도 '낮잠'. 순정률과 정현파만으로 만든, 일체의 감정도 육체도 배제된 가장 순수한 음악. 소박한 방 풍경들과의 조화가 신비로웠다.
지혜/ 우리집 고양이는 항상 같은 자리에서 낮잠을 잔다네.
윤경/ 아마도 순환하고 있을 듯 합니다 : 선풍기가 끝물인 계절이었다.
연쇄시간살해사건 3:00 - 4:00 pm
"취미가 많습니다. 그런데 집중력이 없습니다. 무엇이든 5분 넘게는 못하는 제가 10개 넘는 취미를 갖고 있습니다.
(...) 저는 돈과 시간과 감정을 버리고 내일을 얻습니다."
- 지구
지혜/
수많은 지구 중 하나가 되어 화면 속 지구를 지켜보고 지구의 말을 하며 시간을 보내보았다. 그러자 지구가 아닌 나에게 지구의 마음이 선명하게 들어오는, 그런 사건이 벌어졌다.
윤경/
대상에 집중하는 동안 숨을 평소보다 얕게 쉴 수 있습니다 :
알록달록 수많은 지구들 중 하나가 되어 보았다. 혼자 하는 말이지만, 마치 수많은 나들이 나를 응원하는 것처럼.
지구/
퍼포머로 참여한 지구입니다. 한없이 멜랑꼴리를 9시간 동안 스트리밍 하며 저는 여느 때와 별로 다를 것 없는 하루를 보냈습니다. 담배를 피우고, 아주 많이 피우고, 불안발작을 겪고, 밥을 꾸역꾸역 먹고, 음악을 듣고, 취미생활을 하다, 무너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동시에 아주 특별한 하루를 보냈습니다. 취미거리를 처음으로 하나로 붙여 제가 버린 시간에 형상을 만들었습니다. 그것을 하나씩 다시 뜯어 흩어버리며 얻어진 내일과 그 의미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외면하던 것들을 마주했습니다. 저를 무너뜨리는 따뜻한 것들을 생각했습니다. 제 한계점을 보고도 다시 돌아오는 다정한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한없이 멜랑꼴리와 함께 시간을 보낸 모든 사람들이 따로 있었지만 결국 우리는 함께였습니다.
함께 모여 우리는 눈을 가리며 함께 음악을 듣고 눈물 콧물을 쏟았습니다. 저는 그 경험이 마음에 남아 두 눈을 가리는 손 모양을 타투로 발목에 남겼습니다. 아주 먼 나중에 그때의 기억을 잊어도, 발목을 보면, 두 손을 들어 눈을 가리면 저는 다시 함께였던 우리를 볼 것입니다.
한없는 멜랑꼴리를 겪고 있는 우리가 함께 멜랑꼴리했다는 것에 안도를 느낍니다. 어쩐지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이번에는 그렇게 내일을 얻었습니다.
외면-한계점 4:00 - 6:00 pm
* "외면"과 "한계점" 퍼포먼스는 대체로 구분 없이 이어지므로 각 퍼포머마다 하나의 영상으로 게시합니다.
[외면] 당하거나 하면서.
[한계점] 침잠하던 방향으로 한 단계 더, 혹은 다른 쪽으로 비어져 나가기!
외면-한계점 선희
외면-한계점 선희
외면-한계점 진아
외면-한계점 진아
외면-한계점 지구
외면-한계점 지구
외면-한계점 지혜
외면-한계점 지혜
외면-한계점 윤경
외면-한계점 윤경
[외면]
지혜/
무기력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때에 선희와 진아가 우울에 공명하는 작업을 해보자고 했다. 내 우울함을 성토해야 하는 것인가, 당신의 우울함을 들어줘야 하는걸까, 우울할 수도 우울 했을 수도 우울하지 않을 수도 있는 여러분과 무엇을 나눠야 하는걸까. 그리고 왜. 작업의 과정 속에서 나는 여전히 혹은 더욱 더 무기력해지고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떼우고 싶어진다. 있잖아, 우린 뭘 너무 많이 하고 있어.
윤경/
어디가? 라는 질문을 받는 순간 표정이 굳는 건 어디 갈지 생각을 안해봤기 때문입니다. 기분이 나쁜게 아니에요 :
문득 다들 어떤 여행을 좋아하는지 궁금해진다. 정처없이 돌아다니는 감각, 삼천포로 빠지는 여행을 좋아한다. 안내책자에 빤히 나와있는 장소를 마치 드라마틱한 우연 속에서 발견한 듯한 바보놀이 가끔 한다.
[한계점]
지혜/
언젠가부터 말을 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그러나 동시에 말을 하고 싶은 마음도 강해지고. 그래서 잠시, 의식을 내려놓고 아무말이나 해보기로 한다. 혼자서는 결코 하지 않을 짓을 라이브로 지켜보는 몇 명의 관객들의 시선을 즐기며. 그러나 의식을 내려놓기란 결코 쉽지 않고 자의식은 점점 더 강해져만 가는데..
윤경/
맞닿으려고 :
계단 앞에서 신나는 음악소리가 들리고 마침내 모험이 끝나간다. 집에 있던 방송이 끊겼는데 때마침 방문자가 도착하여 두 사람이 한 프레임 안에 들어오는 감동의 현장. 고양이 화장실과 인간의 화장실 수도꼭지 사이 좁은 스테이지를 삽시간에 장악하는 땐스땐스
저녁 식사와 휴식
6:00 - 8:00 pm
말할 수 없는 것
그러나 삼킬 수도 없는 것
그리고 혼자 있고 싶지 않은 밤 8:00 - 9:00 pm
한 손을 가슴에 = 들리는 단어 혹은 문장을 따라한다.
양손 맞잡고 = 연상되는 단어 혹은 문장을 말한다.
한쪽 손바닥을 앞으로 = 들리는 단어 혹은 문장의
반대되는 의미의 말을 한다.
양손을 귀에 = 선희의 말이 들리지 않도록 덮는다.
지혜/
따로 또 같이 하루를 보내며 이토록 강한 연결감을 느끼게 될 줄은 몰랐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눈물콧물의 캠프파이어.
윤경/
혼자 있지 않기로 합니다 :
화면 밖으로 지혜가 잠시 사라진다. 아마도 눈물을 정리하고 있을 것 같다. 우린 떨어져 있고 눈 앞에 보였다가 안 보였다가 하는데, 여하튼 혼자 있지 않기로 한다.
[제작 후원]
강말금 권정희 권형준 권희수 김동우 김민경 김민조 김수진 김신록 김영상 김은한 김정은 김지연 김지은 김지현 김지현 김태은 김현수 김현진 나온유 박유진 박찬규 박하늘 변승록 서가영 서상현 성수연 송이원 신강수 양근애 염경석 염문경 우수진 우정인 원지영 유연주 이남주 이동경 이재미 이정은 이지원 이지윤 이한빛 이해든 임은정 임지민 장윤정 전서아 정대용 최세원 한민주 홍예원 홍혜은
*<한없이 멜랑꼴리>는 서울문화재단 "소소한기부" 프로그램을 통해 제작비를 모금하였으며, 총 53명의 후원자 분들께 지원을 받았습니다. 또한 당일 퍼포먼스가 끝난 뒤 아홉 분께서 후불 관람료를 입금해주셨습니다.
*퍼포먼스의 저작권을 비롯하여 초상권과 소유권은 김진아, 배선희, 이상욱, 이지혜, 지구, 최윤석, 허윤경에게 공동으로 있음을 밝힙니다.
라이브 스트리밍 퍼포먼스 < 한없이 멜랑꼴리 >
/ 선희
1. 보여주기를 위함이 아닌 퍼포먼스 <한없이 멜랑꼴리>
10초를 봐도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우울감에 대한 퍼포먼스가 낮 12시부터 밤 9시까지 진행된다는 것을 당신이 알고만 있다면, 심지어 전혀 보지 않아도 괜찮다고, 정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한없이 멜랑꼴리>에는 전개되는 이야기나 특별히 주목해야하는 서사적, 극적 순간이 없었습니다. 보여주기를 위함이 아닌, 각 퍼포머들의 신체와 행위를 통해 드러나는 수행성이 실행되고 있는 시간을 지각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기 때문입니다. 퍼포머를 포함하여, 떨어진 신체로 각자의 공간에 놓여있는 우리가, 다소 ‘이상한’ 행위가 이루어지는 시간을 지각하게 되었을 때, 보여지는 객체와 바라보는 주체로서의 구분이 사라지며 이 퍼포먼스에 모두 동참할 수 있게 된다고 믿었습니다.
“1986년 앙겔루스 노부스(Angelus Novus) 그룹이 빈 예술가의 집(Wiener Künstlerhaus)에서 상연한 「호메로스 읽기 (Homer lesen)」가 있다. 이 그룹의 구성원은 『일리아스(Ilias)』의 1만 8천 줄을 교대해가면서 22시간 동안 쉬지 않고 낭독했다. 그리고 다른 공간에서는 『일리아스』의 다른 텍스트를 해독했다. (…) 나아가 이 공연에는 시간이라는 요소가 매우 중요했다. 22시간이라는 오랜 시간은 참여자들의 지각 상태를 바꾸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이러한 지각의 변화를 의식하게 했다. 시간이 흐른다는 사실을 지각의 조건으로, 무엇보다 변화의 조건으로 의식하게 된 것이다. 나중에 참여자들은 이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자신의 느낌이 변화해갔다고 진술했다.”1)
이 순간에도 우주는 팽창하고 있지만 누구도 팽창하는 우주를 직접 볼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팽창하고 있는 우주를 지각함으로써 지금 이 순간 볼 수 있고 감지할 수 있는 공간의 범위와 시간의 개념이 달라지는 경험을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한없이 멜랑꼴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지각함으로써 상상력이 건드려지고 그에 의해 몸의 물리적 감각 또한 달라지는 경험을 나누고자 기획한 작업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반드시 봐야만 하는 대상도, 결과물로서 형태를 갖춘 작품도, “언제나 새롭게 지각되고 의미화되는 객관물”2)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울감에 감응하는 신체로서 긴 시간 동안 수행적 행위를 통해 ‘살아있는’ 퍼포머들을 매개로, 다른 속도로 흘러가는 ‘시간’을 감각하기 위한 작업에 가까웠습니다. 주어진 시간동안 정처 없이 걷거나, 바라보거나, 무언가를 만들거나, 공상하거나, 잠을 자거나, 식사를 하거나, 만들었던 무언가를 부수거나, 춤을 추거나, 머릿속에 떠오르는 글을 끊임없이 타이핑하는 행위들은 별도의 사전 연습 없이 그 순간에 일어나는 ‘사건’으로 진행되었으며, 참여자를 비롯하여 관람자들 중 누구도 전체 퍼포먼스를 감상하지 못했습니다. 조금 전만 해도 비워져있던 잔이 잠시 후 채워져 있다거나, 바로 서 있던 신체가 바닥에 붙어있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릴 뿐, 잔이 채워지는 과정과 신체가 바닥으로 서서히 가라앉는 과정을 놓치지 않고 전부다 보기란 불가능했습니다. 그렇게 찰나의 변화들을 거듭 포착함으로써 강하게 지각되는 건, 지금 이 순간에도 흘러가고 있는 ‘시간’에 대한 감각이었습니다.
그리고 <한없이 멜랑꼴리>는 해가 넘어갈 만큼의 꽤 긴 실시간 동안 개별자들이 앓고 있는 ‘우울’에 대해 집단적으로 발화하는 퍼포먼스였습니다.
2. 지극히 개인적인 그리고 정치적인 행위로써의 우울.
“친구들과 함께한 술자리에서 반복적으로 우울과 무력함에 대한 고백들이 이어졌습니다. 몇몇의 친구들은 항우울제를 복용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밤새 술을 마셨습니다.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더 크게 웃고 떠들었습니다. 그러는 중에 모종의 연결감과 이상한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죽고 싶은 심정이라는 것도, 너무 우울하고 무기력하다는 것도, 더 이상 개인만의 고백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3)
이후, 우리 외에도 지속적인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것에 대해 얘기하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 이상하게 생각되었습니다. 20, 30대의 치솟는 자살률이 연일 보도되고 코로나 블루라는 신조어가 등장하며 우울감이 토픽처럼 다뤄지고 있었지만 정말 우울한 개인들은 자신의 우울감을 꽁꽁 숨긴 채 숨죽이며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사랑과 탄생에 대해 스스럼없이 대화 나누듯, 우울과 죽음에 대한 목소리도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탄생이라는 축복된 사건도 우리를 만나고 모이게 하지만 병듦, 죽음이라는 피해갈 수 없는 인간의 사건 역시 우리를 만나고 모이게 한다. 실제로 인간은 스스로의 불안정함과 약함 속에서 더욱 연결되기를 원하고 연결된다. 사람들은 빈번한 적대의 경험에 상응하여 한편으로 끊임없이 누군가와 연결되고 서로 공감을 주고받기 원한다. 발밑이 흔들리고 있을 때 나는 쉽게 흔들리고 넘어진다. 그것은 적대를 야기시키는 조건의 일면이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렇기 때문에 옆의 존재와 연결될 수 있고, 그 적대를 만드는 세계에 대한 명석한 인식과 함께 무엇을 발화할지 알 수 있고, 알아야한다.4)
<한없이 멜랑꼴리>는 우울이 극복의 대상, 위로의 대상, 슬픔의 대상이 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인 작업이었습니다. 또한 전시를 위한 재연과 재현으로써의 우울이 되지 않도록 경계했습니다. 어떤 메시지나 내용을 전하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우울해도 괜찮아, 내일은 괜찮을거야, 조금씩 나아질거야 라는 식의 섣부른 위로와 어설픈 결론을 도출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저 참여자들의 우울감이 개별적으로 전달되고 그것들이 총체적인 경험으로 감각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리하여 같은 시간 우울감을 느끼고 있는 한 개인의 우울과 여기 <한없이 멜랑꼴리>에서 펼쳐지는 우울이 동떨어진 것이 되지 않기만을 마음 깊이 바랐습니다. 그도 우리도 우울한 채로, 떨어진 장소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는 것. 그것이 이 작업의 목표였고 지향이었습니다. 그 시간 이후 발생하게 될 것들은 개인의 영역으로 남겨두고자 했습니다. 함께 시간을 보냈음은 분명하나, 경험만큼은 오롯이 개별적인 각자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한없이 멜랑꼴리>는 우울의 개별성을 드러냄과 동시에 우울감을 느끼고 있는 이들이 연결 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작업이었습니다.
“행위를 함께 수행하는 것은 공동체를 식사 공동체로 형성하며, 제의적 집단을 정치적 공동체로 거듭나게 한다.”5)
우울감에 대한 집단적인 발화가 정치적 행위가 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작업 초 한 적이 있습니다. 정치적인 행위가 무엇인지에 대한 공부가 더 필요하겠으나 힘든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이 힘든 상황임을 증명해내야 힘듦을 인정받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사람들은 자주 스스로를 증명해 내야하는 입장에 처하게 되곤 합니다. 이해와 공감을 얻기 위해서 보편적인 언어로 구체적인 설득을 할 수 있어야하며, 주장한 바에 부합하는 역할을 요구받기도 합니다. 이렇게 스스로를 증명해내기 위해서는 힘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그럴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발버둥 칠수록 깊은 어둠으로 빠져들고야 마는 사람들. 우울과 슬픔과 절망과 낙담과 좌절과 혐오와 미움과 죽음 등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것들을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하루 종일 힘에 부쳐 어떤 말도 행동도 할 수 없는 사람들.
“우울하다.”라는 말의 앞뒤에는 어쩌면, 쓰이지 못한 행간이 있을 수 있음을,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맥락이 있을 수 있음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 싶었습니다. <한없이 멜랑꼴리>의 추상적인 몸짓과 언어들 또한 이 세계를 살아갈 수 있는 또 하나의 방식으로 읽힐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칩니다.
1) "수행성의 미학", 에리카 피셔-리히테, p.34-35
2) "수행성의 미학", 에리카 피셔-리히테, p.28
3) "선희와진아가" SNS 게시 <한없이 멜랑꼴리> 공연 소개글 중 일부 발췌.
4) “움직이는 별자리들”, 김미정, p290 (2부 공통장을 이야기하기 위한 예비 작업 : ‘포스트 개인’의 사유를 중심으로 / 수다와 고양이와 지팡이 : 행복을 해방시키기)
5) "수행성의 미학", 에리카 피셔-리히테, p.60
about us. 선희와진아가
"선희와진아가"는 배우 배선희와 연출 김진아가 함께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지난 봄과 가을에 두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2020년 4-5월/ 주간 영상 메일링 서비스 <기이한 시대의 사랑 : 만날 수 없는 너에게>
9월 6일 오후 12-9시/ 라이브 스트리밍 퍼포먼스 <한없이 멜랑꼴리>
12월 31일에는 <나는 약하니까 거짓말을 해줘>를 극장 상연 및 실시간 영상 스트리밍 예정입니다.
11월 중순부터 모집한 글을 바탕으로 삶의 기억과 죽음에 대한 상상을 담아, 그리고 약간의 거짓말을 섞어서 치루는 장례식 공연입니다.
잠시간의 소멸과 애도의 경험을 함께하실 분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 "선희와진아가"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트위터 (@sunheewajinahga)에 작업 소식이 업데이트됩니다.
> 창작물공유플랫폼 "포스타입"에 <기이한 시대의 사랑 : 만날 수 없는 너에게> 메일링 구독자 분들에게 발송한 영상들과 작업과정 기록이 게시되어 있습니다.
> 『연극평론』 가을호 기획특집(2020.9.1 발행) "코로나 시대의 연극현장, 극장은 멈추지 않았다"에 게재된 김진아 연출의 글을 첨부합니다. 2020년 4월부터 선희와진아가 활동을 하며 '온라인 공연'의 가능성에 대해 고민한 바들을 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