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새 글을 게시합니다.
『연극평론』 가을호 기획특집(2020.9.1 발행) "코로나 시대의 연극현장, 극장은 멈추지 않았다"에 실린 김진아 연출의 글입니다.
2020년 4월부터 "선희와진아가" 활동을 하며 '온라인 공연'의 가능성에 대해 고민한 바들을 담고 있습니다.
현재 공연 기록 영상 또는 실황 영상을 송출하는 형식까지 모두 '온라인 공연'이라고 칭하는 경우가 많고,
'온라인 공연이 과연 극장 공연의 경험을 대체할 수 있는가?' '영상을 공연이라고 할 수 있는가?' 등의 질문을 중심으로 다소 비생산적인 논의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단순히 기록 및 실황 영상을 공개하는 일은 당연히 공연과 다르며, 창작자와 관객 모두에게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래 글에서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온라인 환경에 맞추어 제작, 실연하는 작업만을 "온라인 공연"으로 부를 것,
그리고 그러한 작업에서 가질 수 있는 현장성을 탐색하기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또한, '물리적 거리두기'와 '고립'이 화두가 된 시절에 '연극'이라는 매체가 조응할 방법을 추상적으로나마 제시하고 있는 글입니다.
『연극평론』 2020년 가을호의 같은 섹션에 다른 여덟 분 필자의 글도 게재되어 있습니다.
팬데믹 시국을 겪고있는 공연예술인들의 다양한 시각을 살펴보실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구글문서에서 보기
‘물리적 거리두기’라는 공통의 조건 위에 펼쳐질 연극, 극장
- <기이한 시대의 사랑 : 만날 수 없는 너에게> 영상 메일링 프로젝트 경험에서부터
김진아
“선희와진아가” : 화면을 통과하는 ‘대면’의 시도
이제껏 안정적인 기반을 갖지 못한 작업자로서, 전염병 위기를 차치하고도 연극을 계속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이 크다. 2019년에는 서울청년예술단으로 처음 국가지원금을 받으며 나도 이 장(場)에 속한다는 인식을 가질 수 있었다. 그 전까지 오로지 관객에게 시선이 향했다면, 지원금을 계기로 현장 활동을 지속시키기 위한 제도와 그것을 구성해온 사람들, 그 안에서의 내 위치를 가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조금씩 여건이 나아지리라 기대했으나 올해는 200만원의 연구비를 받는 사업 외 모든 공모에 탈락했다. 많은 동료들이 이런 불안정성을 버티며 작업해왔다는 사실과, 코로나19로 더욱 악화된 환경에서도 대처 방식을 찾아나간다는 데에 경의를 느끼는 날들이다. 지난 4월 배선희 배우와 함께 시작한 “선희와진아가”의 영상 메일링 프로젝트 <기이한 시대의 사랑 : 만날 수 없는 너에게>(이하 ‘기이한 시대의 사랑’)가 연극인이 위기 속에서 택한 대안 중 하나로 지목되기도 했지만, 이는 극장에서 해오던 연극 대신으로 기획한 작업은 아니다. 아직 나에게 ‘극장’은 간신히 또는 운 좋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고, <기이한 시대의 사랑>은 당연하거나 익숙한 작업 방편 없이 어떻게든 연극을 해나가려는 중에 붙잡아본 창작 형태였다. 코로나 확산 이전에 각자 유튜브 작업을 구상해온 두 사람이 만났기에 가능한 선택이기도 했다.
“선희와진아가” 주간 영상 메일링 프로젝트 <기이한 시대의 사랑 : 만날 수 없는 너에게> 진행 개요 · 2020년 4월 18일부터 5월 16일까지 SNS를 통해 메일링 구독 신청자를 모집하였다. · 구독자들에게는 신청일 다음 토요일부터 매주 한 편 씩, 총 네 편의 영상이 발송되었다. ‘부재하는 대상에 대한 그리움’을 주제로 하는 다음 제목의 영상이었다. “그때 우리가 만났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20:49) “a warm up program”(55:13) “낙타의 노래”(12:00) “안데르센은 어쩌면” (18:05) · 메일에는 영상 링크와 함께 작업자들의 편지와 대본 등이 첨부되었다. · 배선희와 김진아가 대본 집필/퍼포먼스 구성, 연습 및 회의와 실연, 작곡, 소품 제작, 배경 설치, 홍보물 디자인, 촬영, 편집, 자막 삽입, 구독자 관리 및 메일 발송, SNS 소식지 ‘주간 너에게’ 편집 및 게시, 개막식과 폐막식 진행 등을 맡았고, 일부 음악 작곡과 오디오 믹싱, 촬영 자문 등의 도움을 얻었다. · 자비로 제작했으며 각자 두세 달 치 공과금과 핸드폰 요금을 낼 정도의 수익이 있었다.
* 2020년 12월 31일까지 sunheewajinahga.postype.com에 작업 기록 및 영상 게시 예정. (일부 유료) |
기획 초기에는 영상과 연극의 경계에 있는 결과물을 기대했지만, 경계나 접점보다는 영상 범주 안의 작업으로 완료되었다. 그럼에도 배선희와 김진아가 연극에서 아끼던 감각들을 담았기에 ‘연극적’인 요소도 다분하다. 촬영 및 편집 기술보다는 퍼포먼스/극의 내용 구성과 수행에 집중하였고, 주로 롱테이크 숏으로 촬영하여 연극에 가깝게 연출된 장면들이 있었다. 배우의 신체 및 소품 운용 또한 연극에서 익숙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에 대한 부연으로는 한 구독자의 “낙타의 노래” 평을 옮긴다. ‘선희와진아가는 연극의 ‘약속‘을 영상으로 이식한다. 퍼포머는 손과 손가락을 사용해 낙타의 움직임을 표현하고 의상으로 배경을 그려낸다. (...) 백열등의 조명은 모래에 하얗게 반사된 일광이 되는가 하면 바다 속을 유영하는 푸른 빛이 되기도 한다. 가내수공업처럼 오밀조밀한 연극적 장치와 약속의 이행이 공상과 상상을 그럴싸하게 수현한 스펙터클보다 마음을 더 잡아 끈다.’(김동우, 인스타그램 @smelzella 게시글 인용)
주요 내용물은 연극이 아니지만 프로젝트 전반이 ‘퍼포머와 관객들의 일상 공간을 극장의 영역으로 삼은 장기 퍼포먼스’로 해석될 여지도 있을 것이다. “선희와진아가” SNS 계정(페이스북/트위터/인스타그램 @sunheewajinahga)은 프로젝트 안내 플랫폼이자 기이한 봄을 지나고 있는 이들의 안부를 묻는 공간으로, 배선희도 김진아도 아닌 “선희와진아가”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메일에 구독자들이 답장을 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으므로 길고 느린 공동의 사건을 형성했다고 느낀다. 극장에 모이지 않고 영상 및 온라인 매체를 활용하는 작업을 ‘비대면’이라 총칭하는 데에 의문이 든 지점이다. 구독자들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으며 가끔 돌아오는 반응에도 시간차가 있었지만, <기이한 시대의 사랑>을 하는 중 극장에서 공연할 때보다 구독자-관객과의 인력을 강하게 느끼는 순간들이 있었다. 영상 외에도 편지글을 통해 ‘전염병으로 개인 간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가 멀어진 지금의 현실’이라는 배경 인식을 공유했기 때문에 ‘느슨한 동시성’이 발생한 듯하다. 또한, 상대와 이 시절에 맺을 수 있는 관계를 궁금해 하고 기대하며, 보이지 않는 얼굴들을 향해있음을 계속 드러내는 작업이었다. 구독자에게 직접 말을 걸면서 신체 움직임을 권하는 두 번째 영상 “a warm up program”에 이러한 지향이 가장 분명하게 나타난다. “선희와진아가”의 첫 번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우리는 화면을 통과하여 ‘대면’할 가능성을 찾고 있었다.
‘온라인 연극’의 가능성
최근 <기이한 시대의 사랑>보다 확고하게 연극을 표방한 온라인 프로젝트가 발표되었다.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기능을 이용한 <‘트렁크씨어터’ 프로젝트 라이브 공연>이다(7월 26일 상연 후 게시 중). 공들여 만든 미니어쳐 세트에서 진행하는 인형극으로, 여러 각도의 카메라 화면을 전환하며 인형의 모험을 보여주었다. 장면에 따라 촬영 프레임이 세밀하게 설계되어 있었으며, ‘연극적’인 조명에 의해 무대, 소품의 물성과 공간감이 영상 너머로 느껴지기도 했다. 이와 같은 작업은 극장 공연의 실황 중계, 또는 기록용 영상 송출과 구분되는 ‘온라인 연극’으로서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온라인 연극’이 단순히 극장 연극을 영상으로 옮기는 작업들을 칭하는 데에도 혼용되고 있으나, 면밀한 논의를 위해서는 ‘온라인 환경에 맞추어 기획, 제작된 연극’에 국한하여 사용해야 할 것이다.)
다만 트렁크씨어터의 작업 또한 <기이한 시대의 사랑>과 같이, 연극 내지는 온라인 연극이라 칭하기에 고민이 되는 요소들이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철저한 계획에 따르는 퍼포먼스와 촬영 동선으로 인해, 반드시 실시간으로 관람하지 않아도 무방한 영상물로서의 완결성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유튜브 관람자들의 실시간 댓글이 있었지만 퍼포먼스에 영향을 미치는 소통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댓글창을 통한 관객참여형 공연을 만든다면 온라인으로도 연극의 현장성과 동시성을 발생시킬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는, 카메라 전환 및 줌 인, 줌 아웃 등의 효과를 극의 진행 요소로 도입하여 화면 위의 연극이 가능할 것이다.
영상 스트리밍 기술이 극장 공연을 불완전하게 전달하는 보조 장치 또는 임시적 대안으로만 쓰이지 않고, ‘온라인 연극’이라는 독자적 영역을 이룰 방법들을 상상해 본다. 예를 들어 ‘불면증으로 잠을 못 이루는 사람들의 회동’을 연기하는 배우들이 자정에 ZOOM(화상회의 전용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만나고, 그 만남을 관객들이 지켜본다면 어떨까? 지금 어딘가의 침대에 누운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나누는 대화를 엿보는 듯한 ‘현장감’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각 배우의 접속 여부가 무대로의 등퇴장처럼 기능하고, 음향으로 관객이 각각의 공간에서 하나의 배경 설정을 공유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거리극과 같이 관객의 일상에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공연으로서 ‘온라인 연극’의 여러 모습이 기대된다. 물론 영상을 매개로 하는 상호작용에는 한계가 있지만, 네트워크에 연결된 신체들의 반응을 상상하는 작업도 흥미로운 과정과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관객의 주의가 영상의 표면에 머물지 않고 그 너머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닿도록 하는 즉흥성과 의외성 - 머뭇거리거나 지연되기도 하고 갑자기 충동적인 움직임을 발생시키기도 하는 리듬 - 이 성공적인 온라인 연극의 요건일지도 모르겠다.
‘물리적 거리두기’라는 공통의 조건 위에 펼쳐질 연극, 극장
온, 오프라인 공간 어디를 극장으로 삼거나, ‘연극’이 물리적 거리두기의 시대에 가장 잘 조응하는 예술일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의 관객은 어느 때보다 ‘거리’와 ‘경계’에 대한 감각이 예민하다. 그 감각들을 쉽게 연동시키는 환경을 극장에 조성함으로써, 팬데믹 시국 뿐 아니라 ‘격리’ 및 ‘배제’와 결부된 동시대의 여러 문제를 직관적으로 공유하는 연극들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관람자의 위치를 둘러싼 물리적 요소들(극장으로 구획되는 범위, 배우와 관객 사이의 거리, 관객과 관객 사이의 거리 등)을 이야기의 성격에 맞게 구성하여 체험 및 해석의 맥락을 만들고, 주제의식을 몸의 감각으로 전하는 작업은 연극에서만 가능하다. 지금 모두에게 주어진 ‘물리적 거리두기’라는 조건이, 이전부터 사회적(이며 따라서 물리적인) 격리를 겪어온 타인의 경험에 보다 깊이 감응할 수 있는 고리로 작용하고, 연극이 그 매개로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올해는 연초부터 유독 ‘격리’의 감각이 힘겹게 다가오는 사건들이 연달아 있었다. 변희수 하사가 강제 전역하고, 여대에 합격한 트랜스젠더 학생이 입학을 포기했으며, 집단적이고 개별적인 성폭력 사건들이 고발되었으나 제대로 해결되지 않아 고립감과 무력감만 쌓이는 경우가 많았다. 모든 작업이 이와 같이 무거운 절망을 직접 마주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 안의 크고 작은 단절의 경험을 더욱 세밀하게 어루만지는 시기가 되어야만 할 것 같다.
극장이 사람들을 모으고는 안전한 환상 속에서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할 여지를 심는 일종의 결계(結界)로 유지 및 확장될 수 있도록, 현장의 필요에 맞는 제도적 지원이 이루어지기를 절실히 바란다. 최근 몇몇 피해 구제 사업은 다수가 극장 연극을 포기하고 영상을 만들어야만 창작자로서 생존할 수 있게 하는 조건부 시혜라는 인상을 받았다. 온라인 작업의 긍정적 방향은 충분히 논의되지 않은 채, 일반 시민에게 공익성을 쉽게 인정받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온라인 연극을 가능한 별도로 지원하되, 코로나19 시국에서 우선 지원해야할 대상은 상대적으로 더 취약한 오프라인 극장 연극일 것이다. 공연 중단 및 객석 축소 조치가 불가피한 시기가 있겠지만, 치밀한 방역체계를 구축해 극장이 여느 공간만큼 안전함을 공표하고, ‘물리적 거리두기’의 시대에 더욱 중요한 연극의 가치들을 조명하며, 공연이 감염 위험을 무시하는 예술가들의 사치 활동일 뿐이라는 일반의 인식을 바꾸는 방향의 정책들이 정비되기를 기대한다.
* 『연극평론』 편집 회의 이후 수정본을 송고하여, 발행된 원고와 본 원고에 일부 차이가 있음을 밝힙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에 새 글을 게시합니다.
『연극평론』 가을호 기획특집(2020.9.1 발행) "코로나 시대의 연극현장, 극장은 멈추지 않았다"에 실린 김진아 연출의 글입니다.
2020년 4월부터 "선희와진아가" 활동을 하며 '온라인 공연'의 가능성에 대해 고민한 바들을 담고 있습니다.
현재 공연 기록 영상 또는 실황 영상을 송출하는 형식까지 모두 '온라인 공연'이라고 칭하는 경우가 많고,
'온라인 공연이 과연 극장 공연의 경험을 대체할 수 있는가?' '영상을 공연이라고 할 수 있는가?' 등의 질문을 중심으로 다소 비생산적인 논의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단순히 기록 및 실황 영상을 공개하는 일은 당연히 공연과 다르며, 창작자와 관객 모두에게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아래 글에서는 기획 단계에서부터 온라인 환경에 맞추어 제작, 실연하는 작업만을 "온라인 공연"으로 부를 것,
그리고 그러한 작업에서 가질 수 있는 현장성을 탐색하기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또한, '물리적 거리두기'와 '고립'이 화두가 된 시절에 '연극'이라는 매체가 조응할 방법을 추상적으로나마 제시하고 있는 글입니다.
『연극평론』 2020년 가을호의 같은 섹션에 다른 여덟 분 필자의 글도 게재되어 있습니다.
팬데믹 시국을 겪고있는 공연예술인들의 다양한 시각을 살펴보실 분들께 추천드립니다.
구글문서에서 보기
‘물리적 거리두기’라는 공통의 조건 위에 펼쳐질 연극, 극장
- <기이한 시대의 사랑 : 만날 수 없는 너에게> 영상 메일링 프로젝트 경험에서부터
김진아
“선희와진아가” : 화면을 통과하는 ‘대면’의 시도
이제껏 안정적인 기반을 갖지 못한 작업자로서, 전염병 위기를 차치하고도 연극을 계속 할 수 있을지에 대한 불안이 크다. 2019년에는 서울청년예술단으로 처음 국가지원금을 받으며 나도 이 장(場)에 속한다는 인식을 가질 수 있었다. 그 전까지 오로지 관객에게 시선이 향했다면, 지원금을 계기로 현장 활동을 지속시키기 위한 제도와 그것을 구성해온 사람들, 그 안에서의 내 위치를 가늠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조금씩 여건이 나아지리라 기대했으나 올해는 200만원의 연구비를 받는 사업 외 모든 공모에 탈락했다. 많은 동료들이 이런 불안정성을 버티며 작업해왔다는 사실과, 코로나19로 더욱 악화된 환경에서도 대처 방식을 찾아나간다는 데에 경의를 느끼는 날들이다. 지난 4월 배선희 배우와 함께 시작한 “선희와진아가”의 영상 메일링 프로젝트 <기이한 시대의 사랑 : 만날 수 없는 너에게>(이하 ‘기이한 시대의 사랑’)가 연극인이 위기 속에서 택한 대안 중 하나로 지목되기도 했지만, 이는 극장에서 해오던 연극 대신으로 기획한 작업은 아니다. 아직 나에게 ‘극장’은 간신히 또는 운 좋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고, <기이한 시대의 사랑>은 당연하거나 익숙한 작업 방편 없이 어떻게든 연극을 해나가려는 중에 붙잡아본 창작 형태였다. 코로나 확산 이전에 각자 유튜브 작업을 구상해온 두 사람이 만났기에 가능한 선택이기도 했다.
“선희와진아가” 주간 영상 메일링 프로젝트
<기이한 시대의 사랑 : 만날 수 없는 너에게> 진행 개요
· 2020년 4월 18일부터 5월 16일까지 SNS를 통해 메일링 구독 신청자를 모집하였다.
· 구독자들에게는 신청일 다음 토요일부터 매주 한 편 씩, 총 네 편의 영상이 발송되었다.
‘부재하는 대상에 대한 그리움’을 주제로 하는 다음 제목의 영상이었다.
“그때 우리가 만났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20:49)
“a warm up program”(55:13)
“낙타의 노래”(12:00)
“안데르센은 어쩌면” (18:05)
· 메일에는 영상 링크와 함께 작업자들의 편지와 대본 등이 첨부되었다.
· 배선희와 김진아가 대본 집필/퍼포먼스 구성, 연습 및 회의와 실연, 작곡, 소품 제작, 배경 설치,
홍보물 디자인, 촬영, 편집, 자막 삽입, 구독자 관리 및 메일 발송, SNS 소식지 ‘주간 너에게’ 편집 및 게시,
개막식과 폐막식 진행 등을 맡았고, 일부 음악 작곡과 오디오 믹싱, 촬영 자문 등의 도움을 얻었다.
· 자비로 제작했으며 각자 두세 달 치 공과금과 핸드폰 요금을 낼 정도의 수익이 있었다.
* 2020년 12월 31일까지 sunheewajinahga.postype.com에 작업 기록 및 영상 게시 예정. (일부 유료)
기획 초기에는 영상과 연극의 경계에 있는 결과물을 기대했지만, 경계나 접점보다는 영상 범주 안의 작업으로 완료되었다. 그럼에도 배선희와 김진아가 연극에서 아끼던 감각들을 담았기에 ‘연극적’인 요소도 다분하다. 촬영 및 편집 기술보다는 퍼포먼스/극의 내용 구성과 수행에 집중하였고, 주로 롱테이크 숏으로 촬영하여 연극에 가깝게 연출된 장면들이 있었다. 배우의 신체 및 소품 운용 또한 연극에서 익숙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에 대한 부연으로는 한 구독자의 “낙타의 노래” 평을 옮긴다. ‘선희와진아가는 연극의 ‘약속‘을 영상으로 이식한다. 퍼포머는 손과 손가락을 사용해 낙타의 움직임을 표현하고 의상으로 배경을 그려낸다. (...) 백열등의 조명은 모래에 하얗게 반사된 일광이 되는가 하면 바다 속을 유영하는 푸른 빛이 되기도 한다. 가내수공업처럼 오밀조밀한 연극적 장치와 약속의 이행이 공상과 상상을 그럴싸하게 수현한 스펙터클보다 마음을 더 잡아 끈다.’(김동우, 인스타그램 @smelzella 게시글 인용)
주요 내용물은 연극이 아니지만 프로젝트 전반이 ‘퍼포머와 관객들의 일상 공간을 극장의 영역으로 삼은 장기 퍼포먼스’로 해석될 여지도 있을 것이다. “선희와진아가” SNS 계정(페이스북/트위터/인스타그램 @sunheewajinahga)은 프로젝트 안내 플랫폼이자 기이한 봄을 지나고 있는 이들의 안부를 묻는 공간으로, 배선희도 김진아도 아닌 “선희와진아가”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또한 메일에 구독자들이 답장을 하는 경우도 더러 있었으므로 길고 느린 공동의 사건을 형성했다고 느낀다. 극장에 모이지 않고 영상 및 온라인 매체를 활용하는 작업을 ‘비대면’이라 총칭하는 데에 의문이 든 지점이다. 구독자들과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으며 가끔 돌아오는 반응에도 시간차가 있었지만, <기이한 시대의 사랑>을 하는 중 극장에서 공연할 때보다 구독자-관객과의 인력을 강하게 느끼는 순간들이 있었다. 영상 외에도 편지글을 통해 ‘전염병으로 개인 간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가 멀어진 지금의 현실’이라는 배경 인식을 공유했기 때문에 ‘느슨한 동시성’이 발생한 듯하다. 또한, 상대와 이 시절에 맺을 수 있는 관계를 궁금해 하고 기대하며, 보이지 않는 얼굴들을 향해있음을 계속 드러내는 작업이었다. 구독자에게 직접 말을 걸면서 신체 움직임을 권하는 두 번째 영상 “a warm up program”에 이러한 지향이 가장 분명하게 나타난다. “선희와진아가”의 첫 번째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우리는 화면을 통과하여 ‘대면’할 가능성을 찾고 있었다.
‘온라인 연극’의 가능성
최근 <기이한 시대의 사랑>보다 확고하게 연극을 표방한 온라인 프로젝트가 발표되었다. 유튜브 실시간 스트리밍 기능을 이용한 <‘트렁크씨어터’ 프로젝트 라이브 공연>이다(7월 26일 상연 후 게시 중). 공들여 만든 미니어쳐 세트에서 진행하는 인형극으로, 여러 각도의 카메라 화면을 전환하며 인형의 모험을 보여주었다. 장면에 따라 촬영 프레임이 세밀하게 설계되어 있었으며, ‘연극적’인 조명에 의해 무대, 소품의 물성과 공간감이 영상 너머로 느껴지기도 했다. 이와 같은 작업은 극장 공연의 실황 중계, 또는 기록용 영상 송출과 구분되는 ‘온라인 연극’으로서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온라인 연극’이 단순히 극장 연극을 영상으로 옮기는 작업들을 칭하는 데에도 혼용되고 있으나, 면밀한 논의를 위해서는 ‘온라인 환경에 맞추어 기획, 제작된 연극’에 국한하여 사용해야 할 것이다.)
다만 트렁크씨어터의 작업 또한 <기이한 시대의 사랑>과 같이, 연극 내지는 온라인 연극이라 칭하기에 고민이 되는 요소들이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철저한 계획에 따르는 퍼포먼스와 촬영 동선으로 인해, 반드시 실시간으로 관람하지 않아도 무방한 영상물로서의 완결성을 획득했기 때문이다. 유튜브 관람자들의 실시간 댓글이 있었지만 퍼포먼스에 영향을 미치는 소통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댓글창을 통한 관객참여형 공연을 만든다면 온라인으로도 연극의 현장성과 동시성을 발생시킬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는, 카메라 전환 및 줌 인, 줌 아웃 등의 효과를 극의 진행 요소로 도입하여 화면 위의 연극이 가능할 것이다.
영상 스트리밍 기술이 극장 공연을 불완전하게 전달하는 보조 장치 또는 임시적 대안으로만 쓰이지 않고, ‘온라인 연극’이라는 독자적 영역을 이룰 방법들을 상상해 본다. 예를 들어 ‘불면증으로 잠을 못 이루는 사람들의 회동’을 연기하는 배우들이 자정에 ZOOM(화상회의 전용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만나고, 그 만남을 관객들이 지켜본다면 어떨까? 지금 어딘가의 침대에 누운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손에 쥐고 나누는 대화를 엿보는 듯한 ‘현장감’을 느낄 수도 있지 않을까? 각 배우의 접속 여부가 무대로의 등퇴장처럼 기능하고, 음향으로 관객이 각각의 공간에서 하나의 배경 설정을 공유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거리극과 같이 관객의 일상에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공연으로서 ‘온라인 연극’의 여러 모습이 기대된다. 물론 영상을 매개로 하는 상호작용에는 한계가 있지만, 네트워크에 연결된 신체들의 반응을 상상하는 작업도 흥미로운 과정과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관객의 주의가 영상의 표면에 머물지 않고 그 너머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닿도록 하는 즉흥성과 의외성 - 머뭇거리거나 지연되기도 하고 갑자기 충동적인 움직임을 발생시키기도 하는 리듬 - 이 성공적인 온라인 연극의 요건일지도 모르겠다.
‘물리적 거리두기’라는 공통의 조건 위에 펼쳐질 연극, 극장
온, 오프라인 공간 어디를 극장으로 삼거나, ‘연극’이 물리적 거리두기의 시대에 가장 잘 조응하는 예술일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의 관객은 어느 때보다 ‘거리’와 ‘경계’에 대한 감각이 예민하다. 그 감각들을 쉽게 연동시키는 환경을 극장에 조성함으로써, 팬데믹 시국 뿐 아니라 ‘격리’ 및 ‘배제’와 결부된 동시대의 여러 문제를 직관적으로 공유하는 연극들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관람자의 위치를 둘러싼 물리적 요소들(극장으로 구획되는 범위, 배우와 관객 사이의 거리, 관객과 관객 사이의 거리 등)을 이야기의 성격에 맞게 구성하여 체험 및 해석의 맥락을 만들고, 주제의식을 몸의 감각으로 전하는 작업은 연극에서만 가능하다. 지금 모두에게 주어진 ‘물리적 거리두기’라는 조건이, 이전부터 사회적(이며 따라서 물리적인) 격리를 겪어온 타인의 경험에 보다 깊이 감응할 수 있는 고리로 작용하고, 연극이 그 매개로서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올해는 연초부터 유독 ‘격리’의 감각이 힘겹게 다가오는 사건들이 연달아 있었다. 변희수 하사가 강제 전역하고, 여대에 합격한 트랜스젠더 학생이 입학을 포기했으며, 집단적이고 개별적인 성폭력 사건들이 고발되었으나 제대로 해결되지 않아 고립감과 무력감만 쌓이는 경우가 많았다. 모든 작업이 이와 같이 무거운 절망을 직접 마주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 안의 크고 작은 단절의 경험을 더욱 세밀하게 어루만지는 시기가 되어야만 할 것 같다.
극장이 사람들을 모으고는 안전한 환상 속에서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할 여지를 심는 일종의 결계(結界)로 유지 및 확장될 수 있도록, 현장의 필요에 맞는 제도적 지원이 이루어지기를 절실히 바란다. 최근 몇몇 피해 구제 사업은 다수가 극장 연극을 포기하고 영상을 만들어야만 창작자로서 생존할 수 있게 하는 조건부 시혜라는 인상을 받았다. 온라인 작업의 긍정적 방향은 충분히 논의되지 않은 채, 일반 시민에게 공익성을 쉽게 인정받는 데에 초점이 맞추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온라인 연극을 가능한 별도로 지원하되, 코로나19 시국에서 우선 지원해야할 대상은 상대적으로 더 취약한 오프라인 극장 연극일 것이다. 공연 중단 및 객석 축소 조치가 불가피한 시기가 있겠지만, 치밀한 방역체계를 구축해 극장이 여느 공간만큼 안전함을 공표하고, ‘물리적 거리두기’의 시대에 더욱 중요한 연극의 가치들을 조명하며, 공연이 감염 위험을 무시하는 예술가들의 사치 활동일 뿐이라는 일반의 인식을 바꾸는 방향의 정책들이 정비되기를 기대한다.
* 『연극평론』 편집 회의 이후 수정본을 송고하여, 발행된 원고와 본 원고에 일부 차이가 있음을 밝힙니다.